Friday, March 28, 2008

느낌이 있는 삶 62.- 별 짓(?) 다해가며 살아 온 덕분에....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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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낌이 있는 삶 62.- 별 짓(?) 다해가며 살아 온 덕분에.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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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 몸의 특징 중 한 가지가 심한 ‘저 혈당 증세’와 ‘고 혈당 증세’가 번갈아 가면서 자주 일어난다는 점이다.

이런 증세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 확실하게 답을 해 줄 수는 없지만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만큼 먹는 것, 특히 당질이나 탄수화물에 의한 칼로리를 내 몸의 활동량에 비해서 적게 섭취 할 정도로 먹는 것에 대한 절제력과 대응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.

저 혈당 증세가 서서히 올 때도 있지만 분 · 초를 다툴 정도로 심하게 올 때도 많다. 이때는 초콜릿을 맥주와 함께 먹는다. 알코올이 몸에 퍼지는 시간이 당분이나 물이나 몸에 퍼지는 시간보다 짧다. 이런 것도 어떻게 보면 지혜일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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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에는 나를 ‘희한 한 놈’이나 ‘정신병자’처럼 대했던 사람들 중에는 ‘중년 형 당뇨병’이 나보다 훨씬 후에, 그리고 가볍게 발병되었는데도 오히려 그 사람들은 “골골거리며” 살아가고, 나는 별 짓(?) 다해가며 -시쳇말로- “꺼덕대고 25년(30년) 이상을 살아가는 것이” 자기들 눈으로 비교되는 지금은 10년, 20년 전보다는 호의적으로 대한다.

하지만 지금도 내 생활방식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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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낌이 있는 삶 61.- 춤 짱 목사의 생각과 행동들 ..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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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낌이 있는 삶 61. -춤 짱 목사의 생각들과 행동들 ...‘엽기’ 그 자체

- 죽더라도 정상적으로 죽고 싶어서(?) 별 짓(!) 다한다...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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http://www.mryoum.com/ 의 홈페이지에는 음악에 맞춰서 춤추는 동작들이 13가지 실려 있다.(2004년의 홈페이지에는 11가지) 많은 사람, 그 중에서 당뇨병 환자들이 내 춤 동작을 보았다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.

‘현란한 몸매와 함께 춤 동작이 굉장히 부드럽게 보이고, 동작을 크게 한 것이 눈에 띌 것이다. 하지만 지금도 관절 하나하나는 뻣뻣하고, 근육은 경직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. 관절 하나하나는 뻣뻣한데도 이 관절들을 연결해서―내 나이의 누구보다도― 부드럽게 움직이는 게 내 춤의 특징이다.

절도 있는 춤 동작보다는 유연하면서도 부드러운 -스트레칭에 가까운‐ 동작들을 연결해서 춤을 추는 것은, 이런 춤 동작이 관절과 근육의 이완·수축에 굉장한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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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지금보다 심장이 튼튼하고, 햇볕, 열, 온도, 습도 등에 남들과 같이 적응할 수 있었다면 몸 상태를 이런 춤 동작만으로 유지하려고만 하지 않고 다른 방법들도 모색했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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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내 생각들을 내 놓고 생활했다 하더라도, 나의 이런 생각과 사고방식들을 누가 이해했겠는가? 더구나 신학교와 목사 세계의 첫 번째 특징이 보수성인데, 그분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나의 생각들과 행동들 모두가 완전히 ‘엽기’ 그 자체 일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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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껏 살아오면서 나의 생각과 생활 방식이 정상적으로 인정받은 적은 드물다.
어떤 때는 아예 전무한 상태일 때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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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껏‘굳세어라, 금순아!’ 가 아니고 ‘굳세어라, 상명아!’로 견뎌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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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름철 몇 달 동안은 욕조에 미지근한 물 받아 놓고, 아니면 커다란 고무 다라에 미지근한 물을 하체가 잠길 정도로 받아 놓고, 음악에 맞춰 5분, 10분 춤추다가 몸에 열 오르고, 호흡 가빠져 헉헉대고, 어찌할 수 없게 되면 물 속에서 20분∼30분 동안 몸을 식혔다가 다시 춤추고.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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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짜 내 한 몸 죽더라도 정상적으로 죽고 싶어서(?) 별 짓(!) 다해가면서 만들어 내는 몸뚱이가 ‘지금의 내 몸’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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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낌이 있는 삶 60. - 당뇨병에 대한 이해부족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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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낌이 있는 삶 60. - 당뇨병에 대한 이해부족... ‘관절 퇴화의 지름길’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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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와 형제들은- 내 말대로- 내가 취직 할 수 없는 몸이라면 포장마차나, 미용사 대신에 복덕방이나 비디오가게 쪽으로 직업을 선택하기를 원했다. 시골 사람들답게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미용사 보다는 복덕방 주인이 더 낫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.

내 집안 식구들의 요구는 내 몸의 상황을 철저히 모르고 하는 말이다.
나와 한 집에서 아무리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낸 내 부모, 형제들이라도 내 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.

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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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약 내가 집안 식구들의 요구대로 복덕방이나 비디오가게 운영하는 것을 직업으로 택하게 되면 난방 문제를 히터, 스팀, 난로 등의 직접 난방은 피하고 간접난방으로 해결 하겠지만, 다른 당뇨병 환자와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관절이나 그 밖의 신경 계통이 나쁜 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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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당시에도 나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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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때가 당뇨병 병력 10년∼13년 정도니까 당뇨병 때문에 합병증들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 할 시기였다, ― (RH-787의 병리현상까지 가중치로 겹쳐져서 내 몸의 증상들은 다른 1형 당뇨병 환자들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.) ― 이럴 때 편한 것,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것, 걸상이나 소파에서 하루 8∼10시간 이상을 앉아 있어야 하는 직업을 택해서 생활하는 것은, 아예 ‘관절 퇴화의 지름길’을 일부러 찾아 간다는 말 밖에 안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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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것은 내 부모와 내 형제 뿐 아니고 지금도 전국의 당뇨병환자나 가족들이 알아두어야 할 상식이고, 또 몰랐다면 앞으로는 생각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.
그렇다고 심하게 육체적 노동이 요구되는 직업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가 없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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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통의 당뇨병환자들도 당뇨병이 발병 후에 처음 몇 년은 정상인들과 같은 직업을 선택할 수 있지만, 시간이 10년,20년,30년…. 흐르면 흐를수록 선택 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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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낌이 있는 삶 59. - ‘인류를 아름답게, 사회를 아름답게!’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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87년 11월부터는 내 적성과 맞을 것 같은 미용기술을 배워보겠다고 ‘인류를 아름답게, 사회를 아름답게!’ 라는 모회사의 광고 카―피를 내 것 인양 착각하고 미용사 면허 취득을 위해서 노력했었다.

단적으로 말하겠다. 진짜 죽어라고 미용사 면허증을 취득하려고 미용사 자격증 따는 것에 매달렸지만, 지금도 미용사 면허증은 없다.
좀 웃기는 것은 미용사 면허증뿐만이 아니고 면허증 자체가 하나도 없는 게 오늘날의 내 꼬라지이다. 허다 못해 운전면허증 까지도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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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87년 11월에 미용 학원에 등록한 이후부터 미용면허증을 따기 위해서 시험에 5번 응시했고 실기 시험은 3번 봤다. 내 몸으로는 하루 4과목 실기 시험 보는 것이 역부족이었다. 실기시험에 응시한 것은 그래도 바깥 온도가 낮았던 3월 초에 1번, 그리고 12월 달에 2번b할 수 있었다. 6월 시험에는 실기 시험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까지 준비해 놓았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.
앞에서도 수없이 밝혔듯이 바깥온도가 높아지는 4월 중순만 되어도 몸이 힘든 탓에 6.8월 달에 있는 시험에는 아예 응시 할 생각조차도 접어두어야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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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월초, 12월 달에 보는 실기 시험장에는 대형 히터로 난방을 한다. 실기 시험 보는 날, 새벽부터 준비하고 시험장에 도착해서 1교시까지는 견딜 만 했다. 하지만 2교시부터는 히터 열로 인해서 척추까지 아프고, 숨쉬는 것까지 힘들어야만 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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더위나 열에 치명적으로 약한 것이 내 몸의 특징인데, 내 몸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히터로 난방 하는 시험장에서 실기 시험을 보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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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용 면허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시험에 탈락한 것에 실망하는 것보다는 “이 몸을 가지고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, 어떻게 해야 먹고 살 수 있나” 가 더 무겁게 작용했었다. 88-90년은 이 독백을 되 뇌이면서 ‘흔들리는 내 모습’을 붙들고자 안간힘을 쓰곤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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Monday, July 16, 2007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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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낌이 있는 삶 58. - 햇볕, 더위, 열, 스팀, 히터....지겨운 인생살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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85년 겨울에 무던히도 부모, 자식간에 신경전을 벌이다가 내가 수그러졌다. 당시 율전동은 비육우 모범단지로 지정된 시골마을로서 집집마다 소를 키우고 있었는데, 우리 집도 작은 형이 8 ~ 10마리의 소(한우)를 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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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버지와 몇 달간을 부딪치다가 1,2년 동안 집안일을 도와주면서 지내다 보면 몸도 조금씩 나아지겠지 하는 결심으로 삭발까지 하고 1,2월 달에는 ‘내 몸이 해 낼 수 있는 만큼’ 열심히 움직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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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과 1-2달 의 짧은 기간이지만 그 기간 중에 밥도 잘 먹고, 몸무게도 늘어나서, 내 결심이‘헛짓’(?)이 아니다‘ 라면서 지냈는데, 겨울이 지나 가고 3월이 되면서부터는 햇볕이 드는 날에는 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축 늘어지고, 무력감에 빠지기 시작하자 내 허탈감도 그에 비례해서 켜져만 가야했다.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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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시 몇 달을 방황하다가 86년에는 5월말부터 84년 여름방학 때에 더위를 피해서 갔었던 태백의 절로 갔지만, 절에서 조차도 쫓겨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. ‘너무 병자같이 보인다.’가 쫓겨난 이유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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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도 공짜로 지내는 절은 아니었는데도 대중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(?) -대중은 4명, 그중에서도 1명의 입김덕분에- 대중을 위한다는 종교기관에서, 대중을 위해서, 병든 대중이 쫓겨나야만 했다. 86년에는 절에서 1주일 만에 쫓겨 내려와서 교회에서 3달을 보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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87년 봄에는 ‘그래도 살아 보겠다’고 내 특기(?)를 발휘해 집안 식구 모두가 반대하는 가운데서 실내포장 마차를 한다고 깝죽거렸다. 실내 포장마차는 7개월 정도 해 봤는데, 열심히 한 것은 3.4월 달 밖에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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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에게 햇볕, 더위, 열, 스팀, 히터.... 삶의 전부분이 연결되어있고, 얽매이고, 지배당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. 이 부분을 떠나서 내가 부딪친 끔찍하고도 지겨운 인생살이를 설명할 수가 없기에,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는 부분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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